반지의 제왕보다 200년이나 빨랐던 우리 조상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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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b 작성일 23-07-03 13:59 조회 2,373 댓글 0본문
영국의 소설가 톨킨이 1954년에 발표한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원작으로 만들어 2002년에 개봉한 영화 반지의 제왕 2편: 두개의 탑에서는 주인공 프로도가 악의 본거지인 모르도르에 갔을 때, 적에게 들킬 위기에 처하자 엘프(요정)들이 준 마법의 천으로 자신과 일행들을 덮어서 바위로 보이게 환상을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설화가 이미 <반지의 제왕>보다 200년이나 앞서서 우리 고전 문학에 실려 있었습니다. 조선의 학자인 임방(任? 1640~1724)이 지은 소설인 천예록에는 다음과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이 청나라의 침공을 받았던 병자호란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한양을 빠져나와 피난을 갔습니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만 갑자기 쳐들어온 청나라 군대의 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산과 들판에 온통 청나라 군대가 가득차서 이제 끝장이구나, 하고 그는 생각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 선비와 하인이 소나무 아래에 말을 묶어 두고, 길이가 몇 폭이나 되는 넓고 큰 하얀 천으로 장막을 쳐놓으며 그 안에서 유유자적 지내면서 청나라 군대를 편안하게 지켜보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피난민은 다급한 와중에서도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선비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저기 가득 찬 오랑캐 군대가 안 보이오? 살고 싶으면 빨리 도망쳐야지, 왜 여기서 가만히 있는 거요?”
그러자 선비는 웃으면서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어차피 두 발로 달려 도망을 가봐야 말을 타고 잽싸게 달리는 오랑캐 군대에게 죽거나 붙잡히는 건 다 같지 않소? 당신이 살고 싶다면, 여기 장막 안으로 들어오시오.”
순간 피난민은 선비가 미쳤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달아나도 청나라 군대에게 잡혀 죽는 건 마찬가지이니, 희미하게나마 기대를 걸고 선비가 쳐놓은 장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청나라 군대는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거나 붙잡아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선비 일행이 앉아있는 장막만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장막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듯이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이 다가도록 장막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피난민은 왜 청나라 군사들이 자신과 선비 일행을 내버려두는 것인지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어 황당해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청나라 군대는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청나라 군대의 습격을 하루 종일 받았으면서도 선비 일행과 피난민은 살아남았습니다.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 선비는 하인에게 장막을 거두고 말을 묶어둔 끈을 풀라고 명했습니다. 피난민은 그 선비가 무슨 신통한 능력이 있어서 난리를 피했다고 여겨서 이름을 물었지만, 선비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말을 타고 하인과 함께 달려가 버렸습니다.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난 피난민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병자호란이 끝나자 한양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피난에 올랐다가 청나라 군대에게 붙잡혀가서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나서 돌아온 사람을 만나, 지난날 피난을 가다 청나라 군대와 맞닥뜨린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피난민은 자신이 선비가 쳐놓은 장막 안에 들어갔던 일을 떠올리고 그에게 왜 청나라 군대가 자신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놀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나무 아래에 펴놓은 하얀 장막이라니요? 나는 그런 것을 그때 못 보았습니다. 그 대신 높고 튼튼한 성벽과 깊은 해자(성 둘레에 파놓은 물길)가 있기에, 청나라 군대가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을 뿐이오.”
그러니까 선비가 펼쳤던 하얀 천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사물이 아니라 성벽과 해자라는 환상을 보게 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설정이야말로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마법의 천과 놀랍도록 똑같습니다. 시대에 관계없이 사람의 생각은 다 비슷하지만, 그 부분에서 임방이 톨킨보다 더 빨랐다고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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